‘위플래쉬(Whiplash)’, ‘라라랜드(LaLaLand)’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미국의 우주 시대를 연 첫 걸음의 주인공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퍼스트맨(First Man)”으로 돌아 왔습니다.
영화 ‘퍼스트맨’은 아폴로 11호 선장이자 인류 최초로 달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위기의 극복을 반복하여 영웅적 면모를 갖춰가는 인물의 성장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딸 ‘카렌’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가 달에서 첫 걸음을 딛기까지 견뎌내야 했던 삶의 무게감과 이를 극복하게 한 집념을 바탕으로 그의 도약을 그려내며 큰 울림을 이끌어 냅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선사하는 우주시대의 낭만
어쩌면 많은 분들께 이 영화가 상당 시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초중반부, 마치 1960년이라는 시대가 스크린에 그대로 투영된 듯, 켜켜히 쌓인 세월을 닮은 질감으로 표현된 장면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장면들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 특유의 “낭만”적인 스타일을 잘 뒷받침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단지 시대의 영웅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오롯이 만날 수 있게 합니다.
인류가 달로 향하는 여정은 냉전 시대였던 1960년대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아주 오래동안 인류에게 하나의 목표이자 꿈이었습니다. 시대마다 달의 의미는 그 여정의 방식은 달라져 왔지만,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떠올라 세상을 비추는 달을 향해 인간이 가진 꿈은 분명 그 어떤 꿈의 여정보다 낭만적이었습니다.
그런 낭만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는 시대. 이전까지 없었던 기술로 “라이벌”인 소련과 업치락 뒤치락하며 그 낭만을 선점했던 미국의 여정은 순간순간을 놓고 보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을테지만, 적어도 그 낭만이 이루어진 순간부터는 시대의 낭만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초중반의 상당 부분은, 현재의 관점에서 그 시대의 “낭만”을 그려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세월이 만들어내는 낭만의 정서에 기대어서 말입니다. 다만, 이렇게 덧씌워진 낭만이라는 정서의 장막이 걷히며 드러나는 “닐 암스트롱”의 여정은 순수와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관객들이 보아온 시대의 낭만의 결은 조금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 낭만은, 상실의 순간들과 좌절의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닐 암스트롱의 첫 걸음에 무게를 더하는 상실의 순간들과 좌절의 시간들
인류의 분명한 진보이자 성취인 “닐 암스트롱”의 달에서의 첫 걸음은, 그 낭만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 어쩌면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과 그 누군가가 지금도 걸어오고 있는 ‘꿈’을 향한 여정을 되돌아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 닐 암스트롱은 크게 세 번의 상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그의 소중한 딸 ‘캐런’의 죽음과 그의 곁을 든든히 지켜준 동료들의 불지불식 간에 일어나는 연이은 죽음은, 달로 향한 여정을 걷고 있는 그의 걸음에 삶의 무게를 더합니다. 그가 견뎌야 했던 상실들이 시대의 낭만을 뚫고 나와 박동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시대가 바라여온 꿈에 대한 환희 가득한 성취가 아닌, 그 길을 걸어온 그리고 걸어가고 있는 또 걸어가야만 하는 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마주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걸음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단순히 순간 순간 터져나오는 상실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닐 암스트롱”에게 닥쳐온 세 번의 상실의 사이 사이를, 꿈을 향하는 길에서 단계 단계 마주하게 되는 절대절명의 위기와 좌절뿐만이 아니라, 삶이기에 그리고 애착이 있기에 경험하고 견뎌내야 하는 결핍, 그리고 불가피한 순간들과 존재들이 주는 좌절들로 채워 넣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난, 누군가에게는 불의의 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화와 같은 자연스럽지만 버거운 상실들과 상실보다 가벼운 그러나 더욱 꾸준할지도 모를 삶 속의 수많은 좌절들. 이러한 상실과 좌절은, 아마도 절대절명의 위기와 극복 그리고 성취에 쉬이 가려지지만,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개인 아니 모든 이들의 삶에 존재하는 고난 아니 삶 그 자체의 무게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꿈을 향해 걷기만 해도 될 것 같았지만, 걷을수록 시간이 지난수록 꿈을 향한 여정을 붙잡는 것은 꿈 그 자체가 지닌 어려움이 아니라 아닌 그 꿈을 이루려는 나의 순간들을 채우고 있는 삶의 무게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이 영화에는 분명 존재합니다.
낭만의 시대, 위대한 도약을 향한 걸음 걸음들에 감춰진 채 얹어져 있던 무게들은, 감독 특유의 영화적 리듬감을 통해 자연스레 드러내지며, “닐 암스트롱”의 첫 걸음을 통해 그 시대가 피워내었던 낭만과 벅차오르는 감정과 더불어 삶의 중압감까지도 온전하게 체득하게끔 합니다.
결국 꿈을 향한다는 것은, 삶과 그 안의 집념
모든 것들을 견뎌내고 딛어낸 “닐 암스트롱”의 달에서의 첫 걸음은, 그 순간, 그가 그 걸음을 내딛기 위해 끝없이 견디고 걸어온 그 모든 걸음들의 원동력을 되돌이켜보게 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를 비춘 영화의 모든 장면들은, 어떠한 대단한 순간 순간들의 기록이기보다는,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 그리고 이를 짊어지고 버티게 한 집념을 오롯이 비추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영화 “퍼스트맨”은 위대한 도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수많은 작은 도약들일 뿐인 인물들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기록들에서 조금은 빗겨져 나와, 그 작은 도약들 사이 사이를 채우고 있는 (또는 지탱하고 있는) 삶의 집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닐 암스트롱”의 걸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자신만의 ‘달’을 향한 누군가의 (어쩌면 모두의) 숭고한 집념이자 걸음이 됩니다.
그렇게 영화 ‘퍼스트맨’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짊어진 이의 집념과 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분명히 낭만적인’ 꿈의 실현, 그 꿈이 이루어진 현실을 그리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말입니다.
영화 속 놓치면 안 될 분명한 도약의 경험
리뷰의 종장으로 가기 전에, 잠시 이 영화가 가진 영화적인 “도약”과 매력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그 전에 먼저, 줄곧 낭만과 상실, 좌절과 집념에 집중하느라 하지 못했던 이 영화의 매력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간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은 단순하지만 분명한 선율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유지시킵니다.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선율은, 때로는 낭만을 때로는 아픔을 때로는 성취를 표현하며 영화과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분명한 합일을 보여줍니다. (정말 쓸데 없는 여담이지만, 이 리뷰를 쓰는 순간들의 8할은 바로 그 단순하고 분명한 선율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작 “라라랜드”에서 함께 한 “라이언 고슬링”의 호연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완벽합니다. 전작 “라라랜드”에서 낭만의 재구성을 성공적으로 해낸 후,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한 개인의 고뇌와 숭고한 선택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배우 “라이언 고슬링”은 이번 “퍼스트맨”을 통해 그 모두를 표현해내며 “퍼스트맨”의 유일무이한 “닐 암스트롱”이 됩니다.
끝으로, “닐 암스트롱”의 아내 “자넷 암스트롱” (클레어 포이 분)이 맡은 롤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 다시 이 영화에서 경험해보아야 할 “도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넷 암스트롱”은 “닐 암스트롱”의 배우자이자 주변인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클레어 포이”는 이러한 “자넷 암스트롱”의 의미를 분명히 응집시키며 영화의 메세지를 공고히 합니다.
자, 이제 “도약”에 대한 말씀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영화 ‘퍼스트맨’은 앞서 이야기했듯, 데이미언 셔젤 감독 특유의 리듬감을 통해 관객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영화적 문법을 영리하게 뛰어 넘습니다. 이러한 영화적 “도약”은 어떠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또는 “온전한 사유의 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들의 전개 방식을 조금은 벗어난 셔젤 감독의 내용 상의 그리고 전개 상의 도약은, 그러나, 영화 ;퍼스트맨”을 채우고 있는 상실, 집념, 그리고 실현과 그 사이의 농밀함을 위한 분명한 장치입니다. 이러한 영화적 도약이야말로 관객이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또 하나의 경험이자 도약의 발판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보다 더더욱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바로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내딛는 첫 걸음의 순간입니다. 그 첫 걸음의 순간에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선명하고도 아득한 달의 풍광은 이 영화의 초중반의 시각적 왜곡으로 인한 피로를 한 순간에 날려버립니다.
영화 초중반 내내 시대적 낭만을 위해 포기된 듯만 했던 선명함이, 사실은 달을 향해 내딛어지는 그 첫 걸음의 순간을 관객에게 보다 더 명확히 그리고 실감나게 경험케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 착륙 장면의 압도적인 풍광은 근래의 대개의 아이맥스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분명한 ‘체험’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은 단순히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쩌면 셔젤 감독이 목표했을 그 시대의 그 순간에 관객 스스로가 서있는 듯 한 경험의 “도약”을 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경험은 “닐 암스트롱”과 같이 상실과 좌절을 지나 걷고 있는 모두에게 위로이자 응원이 될 분명한 선물이 됩니다.
자신만의 도약을 향해 걷고 있는, 세상의 모든 집념에게
사실 그간 보아온 영화들 중에 영화적으로 “퍼스트맨”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영화들도 많았지만 이 영화를 리뷰하게 된 가장 큰 까닭은, 바로 이 영화가 세상의 모든 집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위로”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한 관객이자 영화 리뷰어로서, 삶의 무게 속에서도 자신만의 도약을 향해 걷고 있는 집념을 지닌 이들이 이 영화를 만나보길 바라여 봅니다.
‘닐 암스트롱’이 영화 속에서 견뎌온 시간은 우리네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의 상실, 견뎌야 하는 모순과 차이가 늘 도사리는 현실, 그리고 나 자신의 불완전함. 그럼에도, 우리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속 ‘닐 암스트롱’이 그러하였듯 말입니다.
WALKING MAN
끝으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며 떠오른 또 다른 “집념을 향한 위로”를 전해드리며 조금은 길었을 이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자코메티 “Walking Man”
자코메티 “로타르 좌상”
지금의 걸음을 멈추지 마세요. 우리 또한 분명 도약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약의 순간은, 지금까지 짊어져온 무게에 대한 분명한 위로이자 가치를 전해줄 것입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