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걸 참 좋아하는 저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로 또 바쁜 업무를 핑계로 영화를 보는 일도 그 감상을 나누는 일도 조금은 소홀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놀랍게도(당연하게도) 그간 보아온 좋은 영화들에 대해서 오영비(오롯이 영화를 비추다)에 몇 편 포스팅을 준비했었는데요. 조금 다 잘 그리고 상세히 영화를 소개하고픈 마음에 글을 쓰다가 중단하고 (안테나곰님한테, “쓰던가 지우던가해라!”라고 눈치 받으면서) 그간 영화 이야기는 통 전해드리지 못했네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간 극장에서 보아 온 영화들에 대해 간단한 소개 또는 추천 리뷰를 “한 편으로” 써볼까 합니다.
1. 루이스 웨인 –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당신의 사랑이 남긴 것”이라는 소제목으로 리뷰를 열심히 쓰다가 중단한 바로 그 영화입니다.
정말 좋았기에 정성껏 영화 리뷰를 쓰려다가 바쁜 업무를 이유로 그대로 묻혀버린 리뷰…
아마존 프라임으로 공개된 영화인데, 개인적으론 아마존 프라임으로 보기보다 극장에서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신예 감독의 영화인데, 신예 감독다운 개성적인 면과 또 예술에 대해 충분히 감각을 가진 이의 수려한 장면들이 정말 인상적이기 때문에, 작은 화면에서 보기에는 조금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여건상(리뷰를 쓰는 현 시점에는 이미 극장에서 이 영화가 내려갔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기가 어려우시다면, 아마존 프라임 또는 국내 OTT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렬하게 가진 생각은 이거에요.
“나의 사랑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그리고 무엇을 남겨 왔는가?”
영화 속 루이스 웨인과 에밀리 리처드슨의 사랑 그리고 인생을 지켜보며, 에밀리 리처드슨으로 인해 그리고 에밀리 리처드슨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보다 자신다운 사람이자 예술가가 된 루이스 웨인을 보며, 나의 사랑은 어떠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아무리 좋은 영화가 나와도, 제게는 올해의 인생/로맨스 영화 TOP 3 안에 들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화로 앞에서 루이스 웨인과 에밀리 리처드슨이 나눈 대화는, 제가 앞선 회사의 프로젝트 송별식에서 언급했을만큼, 너무도 좋았고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루이스 웨인 전(전시회)도 다녀왔습니다.
2.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개인적으론 완다의 이야기와 장면들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완다비전 꼭 보고 보세요!”라고 말하진 않을거지만, “완다 비전”을 보고 보신다면 완다의 이야기가 더 와닿고 어쩌면 (저처럼) 눈물 질끔 흘리시게 될지도…
저는 완다와 스칼렛 위치의 장면에서 거의 억장 와르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다만, 이번 작품으로 그간 설마 설마 했던 이번 페이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의 아쉬운 점이 확실해졌습니다.
하나는, 저는 MCU가 멀티버스에 대한 좀 더 풍부한 줄거리와 해석을 가져왔으면 했는데, 지금까지의 멀티버스에 대한 언급과 활용을 보면 그저 줄거리와 뻗어나가는 전개들을 한데 모으거나 필요할 때 분지시키려는 용도 정도로 고려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건 사실, MCU에서의 활용을 별개로 이전부터 멀티버스에 대해 여러가지 재미난 상상을 해오던 저의 개인적인 아쉬움이기에, 굳이 중요한건 아닙니다.
MCU의 팬으로서 정말 아쉬운 건, 지난 페이즈의 영웅들이 이번 페이즈의 성립을 위해 속절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분명히, 다음 페이즈의 준비에서 디즈니 마블은 두 가지 선택을 고려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고려의 핵심은, 지금까지 이야기를 잘 쌓아온 이전 세대의 영웅들에게 조금 더 성장과 역할의 관점에서 기회를 줄것인가? vs 새로운 세대로의 중심축 이동을 위해 이전 세대 영웅들의 하차와 새로운 세대 영웅들의 등장에 대한 당위에 힘을 실을 것인가? 로 요약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디즈니와 마블은 “인피니티 사가”의 PTSD 유발하는 대사건을 종결 짓자마자, 바로 다음 세대로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동하기 위해 이전 세대 영웅들을 소모적이고 일종의 디딤돌로 활용하는 방식은, 팬으로선 많이 아쉬웠습니다.
사실 페이즈의 전진은 다양한 분기점이 가능한 마블 코믹스에서는 크게 무리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상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MCU에서는 아무리 디즈니플러스라는 플랫폼과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활용한다고 해도 신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미 이전 세대의 영웅들은 대개 다 소모되었으니,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세대의 영웅들 또는 세계관이 충분히 안착한 뒤에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길 바라는 수 밖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아쉽네요.
쓰고보니 닥터 스트레인지에 대한 후기나 리뷰가 아니라, MCU에 대한 토로가 되었습니다.
3. 모어 (MORE)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고,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감독님이 해당 작품의 주제이자 주연인 “모어(모지민)”님의 삶에 너무 큰 인상을 가지셨는지 한정된 시간 하에 너무 많은 매력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다보니, 오히려 작품으로서의 깊이감은 다소 얕아진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의 이유가, 그만큼 감독님이 모지민님의 삶을 존중하고 더 널리 보이기 위한 고뇌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어 이해도 되었습니다. 그만큼 작품의 구성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하여서, 보는 재미는 분명 있었습니다.
영화 “모어”
운 좋게, 모지민님이 참석한 GV 회차에 영화를 보았는데, 모지민님은 감독 분이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은 장면들을 다 담지 못해서 아쉽다고 장난 삼아 토로하시더라구요. 근데, 그게 더 담겼으면 아마 정말 작품이 산으로 갔을 수도… 라는 개인적인 생각 🙂
모지민(모어)님 화이팅!
감독님 화이팅!
사족이지만, 영화를 보며, 모지민님과 애인 분의 삶에서, 재능이 넘치는 빛나는 이와 그 빛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이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4. 탑건 – 매버릭
저에겐 이 작품이 골드클래스에서 처음 본 영화가 되었습니다. 저는 자리보다 스크린과 음향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사실 그간 골드클래스는 저에겐 메리트가 없는 곳이었는데, COVID-19 상황과 안테나곰님의 “큰 극장 시러” 모드로 골드클래스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탑건 매버릭
탑건 – 매버릭은 정말 블록버스터 흥행 영화의 모범답안 같은 영화였습니다.
영화 내내 전작에 대한 향수를 가진 팬들을 위한 배려와 함께, 막판에 휘몰아치는 비행씬과 전개는 블록버스터로서 확실히 그 가치를 보여주더군요.
그냥, 보세요! 말고는 더 할 말도 없이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5. 헤어질 결심
아가씨 때도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님은 확실히 자신만의 로맨스 가치관이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가치관이 저는 싫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을 적절히, 과한 것 없이, 수려하면서도 장르적으로 녹여내는 능력 역시, 정말 멋진 것 같습니다.
박해일님과 탕웨이님의 캐스팅 역시 정말 완벽했습니다. 특히 소년과 중년남성의, 어쩌면 당연하지만 연기로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을, 박해일 씨가 장면마다 적절히 완급조절을 하며 풀어나가는걸 보며 정말 감탄을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
영화를 보면서, 그간 보아온 여러 영화들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기시감이라기보단, 아 그 영화에선 이 소재를 이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었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p.s. 녹음은 신중히, 관리는 꼼꼼히
p.s. 나는 왜 두 주인공의 장면들이 아닌,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당당하게 퇴장하는 한 인물의 모습에 실소를 했을까?
6. 초록밤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이 영화의 초고에서의 초록밤은 소주병에 비친 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밤을 채우는 초록빛이 주는 이질적인 스산함/쓸쓸함을 잘 납득시킨 작품 아닐까 싶습니다.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강길우님이 출연하였지만, 사실 영화의 중심은 “아버지” 역의 이태훈님으로부터 뻗어나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영화의 매력이 더 잘 살아날 것 같았어요.
초록밤
영화를 보며, 인디영화 중에서도 단편영화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 좋은 장면들이 많은데, 이러한 장면들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에 대해서는 영화 속에서 설명해주기보다 관객에게 맡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불친절하거나 이해를 바라지 않는 영화처럼 느끼질 수도 있을것 같았지만, 살아온 삶과 사람들을 대입해가며 본다면, 매력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해보였습니다.
이날 감독분과 영화평론가 정성일님의 GV를 관객과의 질문 전까지 듣고 나왔는데,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언제나 존경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정성일님의 평을 듣다보면, 저의 감상과 결이 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근데 이러한 다른 결이, 옳다/그르다 또는 맞다/아니다의 측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행로 그리고 시각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본 후의 시간을 더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없는 영화 연출적인 측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느낌으로만 느꼈던 장면들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시는 점은, 그 어떤 GV 평론가분들보다 좋습니다 🙂
7. 멋진 세계
니시카와 미와의 전작 때도 느꼈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에서도 느꼈지만, 일본 여류 감독분들은 분명한 그 결이 있어요. 그 결이 국내에서 삶과 인생을 보는 결과는 사뭇 달라서, 언젠가 일본 영화의 제 2의 부흥기가 온다면 이러한 결이 잘 다듬어지고 더 성숙해져서 우리 곁에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희 부모님께서는 오래동안 교도소 선교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에 남들은 쉽게 가보기 힘든 사형수 분들이 계신 곳도 가보고 그 분들과 대화도 나누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 네가 본 모습도 그 분들의 모습이지만, 또 그 분들이 가진 모습들이 있으니 양면을 다 생각해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로부터 배운 많은 것들 중,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저는 주인공의 행동들이 한 편으론 위태롭고 한 편으론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가는 장면에서 울컥하고 말았어요.
주인공과 오래전 친구였던 이의 누님이 던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주인공에게 또는 주인공과 같은 이들에게 분명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쉽게 해줄 수도 보여줄수도 없는 이야기이자 모습이었거든요.
이 장면 이후로 저는 그냥 무장해제.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상심 이후에 찾아온 이 장면 하나로 저는 이 영화를 본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주변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따스함을 품은 도움들이 참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더군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어느 거장의 영화의 결말과 같은 결의 결말은, 그저, 마지막 장면의 코스모스가 주인공에게 후회가 아닌 순정의 모습으로 비추어졌기를 기원하게만 하였습니다.
멋진 세계
다시 한 번 느꼈지만, 니시키와 미와 감독은, 영화를 글처럼 써요.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되는데, 그 느낌이 갈수록 깊고 세련되어져서, 참 좋네요.
잠시의 쉼을 끝내고,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앞서 올린 갤럭시Z폴드4 리뷰글들을 쓰며, 다시 한 번 느꼈는데… 저는 사실 소통은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힘들어하는거 같다고 느꼈어요. 다행히 폴드4 사용기가 조회수가 터져서 (네이버님 구글님 무한감사) 기쁘기는 한데… 당분간 블로그 글은 오롯이 먹다 위주로 가볍게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그간 보아왔던 영화들에 대해, 작게작게라도 이야기할 거리를 정리해서 함께 나누어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너무 별거 없는 리뷰가 되었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보시는 분들께 어느 한 부분은 재미가 있는 리뷰였으면 합니다.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