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그리고 COVID-19 이후 처음으로 종로구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습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인디영화를 보러 자주 들렀던 극장인데, 작년 한 해 동안은 그 해를 무사히 버텨주길 바라며 들르질 못 했었습니다.
* 인디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 위치한 인디영화 전용관으로, 인디영화 전용관으로는 상당히 큰 스크린과 좌석수, 알찬 GV로 (내게는) 알려진 독립영화 극장
그래도 CGV의 VIP와, 아트하우스 아티스트 클럽 자격은 수월히 지켜냈는데,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구석자리로) 예매해 마음만이라도 보낸* 덕분이었습니다.
* 예매하고 극장은 가지 못한 경우들로, 때로는 영화 수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예매만 한 때로는 정말 갈까말까를 고민하다 바쁜 일정과 방역지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극장까지는 가지 못한 경우
그리고 이날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난 영화도 작년 말 정식 개봉하여 마음만 보냈던 영화 중 한 편이었는데, 다행히 제가 볼 수 있는 시점(직전 회사 퇴사 후 이직까지 휴식기)까지 상영이 되어 설레는 마음 안고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 ‘잔칫날’은 ‘경만’(하준)과 ‘경미’(소주연)가, 오랜 투병 기간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며 겪게 되는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무명 사회자(MC) ‘경만’은, 아버지의 오랜 투병기간에 비해 너무도 급작스러이 찾아온 이별을 채 애도할 겨를도 없이 ‘TV에 나온 적도 있는’ 선배의 대타로 지방의 팔순 잔칫날 행사 사회를 보기 위해 내려가게 됩니다. 상(장례 기간) 중에 말입니다. 아버지의 장례비를 마련해야 했거든요.
그러나, 어려운 결심 끝에 ‘운수 좋게’ 찾은 잔치 행사는 경만을 결코 수월히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혹여나 이 운수 좋은 기회가 비슷한 제목의 소설과 같은 결말로 가진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잔칫날을 지켜 보다 보니, 고인에 대한 애도마저도 현실의 어려움에 감춰야 하는(역설적으로 기뻐하듯 보내야 하는) 그러나 그마저도 위태로운 외줄타기 위에 놓이어진 듯 보이는 ‘경만’의 모습에 고단한 우리네 삶이 겹쳐 떠오릅니다. 민망스런 상황에 스크린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워질수록, 이야기 초반 흰 분장가루가 남아있던 (‘경만’의 아버지와 같이, 쓰다듬어주고 싶었던) ‘경만’의 구레나룻이 떠올라 마음이 동하여 갑니다. 부디 이 시간의 끝이 위로이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장남으로서, 상주인 ‘경만’이 장례식장을 비운 채 고군분투하는 사이, 여동생 ‘경미’는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며, 장례식장을 찾은 다양한 이들의 제각각의 방식의 애도(또는 다른 무언가)와 현실을 감당해냅니다. 지난한 간병기간이 있었을지라도 결코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아버지와의 이별을 채 온전히 직면하기도 전에, 연락이 닿지 않는 상주인 ‘경만’을 대신해 장례식장의 각종 것들을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경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경만’을 볼 때와는 조금 다른 결의, 막막함은 가족 안에서의 ‘나’(세상의 모든 ‘경만’과 ‘경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련의 일들이 결말을 향해가며, 막막했던 이야기를 향한 시선은 가족을 비춥니다. 세상에 홀로 놓여 겪는 수많은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 나아가게끔 하는, 아픔을 기꺼이 감당해낼 수 있는 이유인 (설사 함께하지 못할 지언 정,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났을 지언 정) 가족을 말입니다.
살다보니, 없기에 오해 받고 그래서 서럽지만 어찌 이유로 꺼내기조차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돈이더군요. ‘경만’의 고군분투와 차마 열리지 않는 입이 더욱 안쓰러운 이유도 그런 현실의 경험이 녹아있는 듯한 상황과 사건들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만’이 처한 상황과 사건은 때로는 너무 극적으로(theatrically) 치달으며 가슴보다 머리로 읽히는 순간들이 있어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특히, 잔칫날 동네의 모습은 ‘경만’의 막막함을 위해 때로는 도식화된 듯 한 장면들로 남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가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장례식과 잔칫날에 이어지는 사건들을 와닿도록 그려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도식화된 장면들은 각자가 가진 의미가 분명하기에-특히, 경만과 비교되는 일식(정인기)의 이야기는 뻔할 지언정 꼭 필요한 그리고 소중한 의미이기에- 충분히 마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굳이 이 영화를 2021년 첫 영화로 택한 이유도,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며 제가 경험했던 가족의 장례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는데, 이야기 속 많은 사건들은 제가 겪은 일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란 생각이 들어 더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특히, 역설적이지만, 아쉬움으로 남는 도식화된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 중 두 장면이, 아이러니하게도 제게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하나의 꼭 필요한 지점(살풀이)와 저의 눈물샘을 각각 건드렸는데,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시고 어떤 장면들이 그러한지 맞추어 보시길 권하여 드립니다 🙂
배우이기도 했던 감독(김록경)이기에 그려내었을, 배우 또는 극에서의 인물로부터 비롯되는 두 집안 모두를 아우르는 살풀이 장면 그리고 정말 상투적일 순 있지만 이 마을을 떠나기 전 ‘경만’에게 주어진 무언가가 건들여버린 저의 눈물샘 정도로 각각을 표현해보겠습니다 🙂
이 영화에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범죄도시/배드파파/SF8 등에서 꽤나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배우 ‘하준’이 자신의 맨 얼굴로 표현해내는 다양한 스펙트럼은, 이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준’ 씨의 팬이든 아니든, 눈에 담아 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날 영화 상영을 마친 후에는, 감독, 배우분들이 참여한 GV(사회: 오정석 감독, 참여: 김록경, 하준, 김진모, 배제기, 관객석 참여: 오치운, 유성재)가 있었는데, 영화에 참여한 분들이 영화를 닮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장면들을, 누구하나 자신이 돋보이는 장면이 아닌, 자신에게 좋았던 인물들의 장면으로 그려내는 게 참 좋았습니다.
여담이지만, 막간에 이루어진 퀴즈 타임에 정답을 맞추며 (무려) 두 권의 책을 받았는데, ‘처음, 인생 2막’이라는 책은, (전 회사에서의 저의 열정과 이어질 꿈에 대한 애도와) 의미 있는 새 출발을 꿈꾸는 저에게 이보다 알맞을 수 없는 책이라, 놀랐습니다 🙂
영화 “잔칫날” 선물: 책 “처음 인생 2막”, “333 감사노트”
끝으로, 영화 속 묵묵히 장례식장을 지켜주는 ‘경만’의 한 친구를 보며, 험한 길 마다않고 저희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아주었던 고마운 분들, 정신없는 중에 애도를 풀어낼 수 있기 지켜준 친척 분들을 비롯한 고마운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올 설에는 그 분들께 좀 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드려볼까 합니다 🙂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누군가의 또는 자신의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의 경험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우리네 모습과 결코 장례에 한정되지 않은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를 느껴보시기를 추천 드리며, A4 두 장을 넘긴 영화 후기를 마무리해봅니다.
아참, 저는 때때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들은 음악들 중 한 곳을 영화와 매칭시키곤 하는데, 이 날은, 요즘 화제작인 싱어게인의 20호 이정권(전국노래자랑 스퀘어 연어장인&팬텀싱어3 서정적 힐러)의 ‘바다 끝(원곡: 최백호)’가 그러하였습니다.
다음 주엔, 저의 후기를 사랑해주시는 거 같기도 한(제 착각일수도, 소심/수줍) 디즈니/픽사의 기대작 애니메이션 ‘소울’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인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안테나곰님과 상의 중이긴 한데, 아주 간간히 올리는 영화 후기이긴 하지만, “오롯이 영화를 비추다”를 다른 채널을 통해 업로드하는 것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안테나곰에서의 저의 “오롯이 영화를 비추다”의 노출 경로가 다른 글들 대비 그리고 기대 대비 너무 민망해서, 안테나곰님이 좀 더 노출이 높아질 수 있는 곳으로 주 업로드처를 옮기는 것을 제안해주셨거든요(쫓겨 나는 거 X, 보다 나은 공간이 마련되는거 O). 결국 제 후기가 부족한 탓인데(먼 산), 여러모로 고민해주신 안테나곰님께 감사를 🙂
지금 DAUM 메인, TISTORY 섹션에 본 리뷰가 올라 왔습니다. 고민해 온 이야기가 조금은 쑥쓰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 더불어 2월 4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MBC 집콕영화제를 통해 영화 잔칫날을 브라운관(TV)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관 방문이 어려우신 분께서는, 2월 4일 밤 MBC에서 영화 잔칫날을 만나보세요 🙂
(이외에도, 1월 21일 목요일에는 영화 “윤희에게”, 1월 28일 목요일에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간은 동일) 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
그럼, 이제 정말 끝맺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잔칫날’이 당신의 마음 속 깊은 상실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닦아내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라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