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서울 올라와서 개(=귀요미)같이 번 돈 정승…은 모르겠고 아무튼 알차게 쓰려고 노력 중인, 저는 팀블로그 안테나곰에서 “오롯이 비추다” 시리즈를 연재 중인 솔데입니다.
팀블로그 안테나곰의 카테고리 중, 저 솔데가 만든 “솔데의 오롯한 공간” 하부 카테고리 중 그간 유일하게 게시글 0인 상태로 남아있던 “오롯이 문화를 비추다” 카테고리에 드디어 첫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의 인스타그램(안테나곰 페이지 링크 참조)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주 또는 격주 1회 이상의 -영화를 제외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본격 서울(살지만 광주에서 직장 다니는)남자입니다. 워낙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편이라, 또 술을 좋아하지 않고 격렬한 운동 또한 그리 즐기지는 않기에, 아무래도 여가의 많은 시간을 문화 생활에 쓰고 있습니다.
미술, 유물, 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는데 고려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1. 내게 (또는 서로에게) 흥미로운가? 2. 내게 가능한 시간인가? 3. 내가 가능한 금액인가? 입니다. 이 세가지를 만족하면, 표를 예매하고 다녀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려 하에 지난 2주 간의 토요일을 책임져준 공연은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 “스텝업”입니다.
솔데의 오롯이 문화를 비추다
국립현대무용단 2019 스텝업 파트 2 후기
정철인 “0g” &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 “스텝업”은 국내 안무가들에게 창작 레퍼토리 개발의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한 안무 공모 프로젝트로, 신작이 아닌 기존의 창작물들의 보완 작업을 통해 완성도 높은 레퍼토리를 무대에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젊은 안무가들이 각자의 기량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담아낸 무대를 다시금 재창작해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는 신예의 번뜩임을 체험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숙련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스텝업 티켓 예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합니다.
R석 3만원, S석 2만원에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10 ~ 20%의 할인을 받을 수 있기에, (초기 1만원의 티켓 가격보다는 비싸졌지만) 여타의 현대무용 공연에 비해 눈 질끈 감고 약간의 무리를 더하면 만날 수 있는 공연입니다.
2019 스텝업 STEPUP 라인업
파트 1. 이재영 <디너> &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랜스포메이션>
먼저 6월 7일부터 9일까지는 이재영 안무가의 “디너” 무대와 이은경 안무가의 “트랜스포메이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이에 대한 리뷰는 저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의 길이보다 길게 작성하였으니 궁금하시다면 저의 인스타그램을 들러주세요.
이재영 <디너>
안무 : 이재영
출연 : 김소연, 안지형, 이재영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랜스포메이션>
안무 : 이은경
출연 : 신재희, 이은경, 피터 암페
오늘 오문비에서 소개해드릴 리뷰는 바로 파트 2 공연입니다.
파트 2 공연에는 정철인 안무가가 연출한 <0g>과 최강프로젝트가 연출한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가 펼쳐졌습니다.
먼저 간단한 요약 정보를 보시면,
정철인 <0g>
안무 : 정철인
출연 : 류지수, 문경재, 전중근, 정철인
연주 : 쾅프로그램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안무 : 최강프로젝트 (강진안, 최민선)
출연 : 강진안, 최민선
촬영퍼포먼스 : 김태경
무대의상 : 로와정
정철인 <0g> : 온전히 본질에 집중해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
정철인 안무가는 지난 2018 스텝업을 통해서 <0g>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좀 더 이전인 2014년에는 그 초기작 격인 <자유낙하>를 선보였는데, 저는 이번 2019 스텝업이 첫 관람인지라 이전 작품과 연계해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아쉽습니다.
다만, 제목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중력에 의한 물체의 낙하(초기속도 0, 지상 방향, 공기 저항력 무시)를 의미하는 <자유낙하>라는 한계이자 특성을 인간이자 무용수로서 벗어나거나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이번 공연이 탄생된 것이라면 0g는 우리가 아는 무게 단위 0 gram이 아니라, 0 gf, 0 g-force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철인 안무가의 0g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짧게(?) g-force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G-force (중력가속도)
G-force는 Gravity force의 약자로, 어떠한 물체가 고공에서 낙하할 때, (고정된 속도로 낙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일정하게 가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타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중력의 힘은 9.8m/s^2 (다시 말해, 1초당 9.8m의 속도 증가)로 측정되었고, 이를 1G로 표현합니다.
0 g (0 G)
네. 이러한 G-force를 기준으로, 만일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를 “0g”, 다시 말해 무중력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철인 안무가의 <0g>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마, <0g>는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고 싶어했듯 본연의 한계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세상 또는 표현을 이루어내기 위한 포부와 같은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카루스의 날개 대신 잘 단련된 육체와 잘 숙련된 두뇌를 통해, 하늘을 나는 대신 보다 자유로운 때로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껴지는 표현을 그려내며 말입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온전히 본질에 집중해 가는 무대
정철인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펼쳐낸 <0g> 무대는, 앞서 설명드린 개념 그리고 이를 통해 유추해 본 의미에 전혀 부족하지 않게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줍니다. 네 명의 무용수가 펼쳐낸 무대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분명히 파워풀하며 분명히 섬세하며 또 분명히 유기적인 퍼포먼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본 리뷰의 전반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엄밀히 말해 단지 본 공연에 대한 감상일 뿐이지, 실제 공연에서 가장 잘 전달되어야 할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그걸 표현하자고, 악 쿵 쾅 쓱 빡 쉭 헉 와삭 같은 단어로 리뷰를 쓸 수는 없으니, “압도적인” 퍼포먼스라는 표현으로 <0g>의 공연을 정의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0g>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토요일 공연 후 정철인 안무가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했던 이야기를 통해 풀어볼 수 있습니다.
(주의 :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서 원 문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
“프로그램북에 있는 속력, 속도, 마찰력, 중력, 탄성력, 원심력, 구심력 등의 개개별의 요소들을 공연에 각각 표현해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요소들은 공연 내에 함께 존재하기도 하며 또 어우러져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의 : 쓰고나니 진짜 원문장은 1도 없음. 그냥 제가 이해한 내용이니 혹시나 관객과의 대화 참석하신 분들은 원문장을 기억하고 계시더라도 모른척 해주세요. 먼 산!)
때로,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의 결과물을 보다보면 그 표현에 있어서 큰 틀에서 출발한 작품이 주제와 각 소재, 상징들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데에 빠져 원래의 틀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또는 큰 틀을 잃고 지엽적인 상징과 해석의 연속으로 맺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0g>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인체를 한정 지으면서 또 분명히 정의하고 있는 힘이, 보다 자유로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우리(무용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극복될 수 있으며 또는 활용될 수 있으며 디딤돌이 될 수 있는지를, 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속력, 속도, 마찰력, 중력, 탄성력, 원심력, 구심력 등을 하나씩 표현해가기보다, 이러한 모든 힘들을 그리고 정의들을 우리 몸이 움직이는대로 또 표현하기 위해 정하여 행동하는 것 자체로 동시에 보여주며 또 느끼게 하는, 날 것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리본다면 사실, 0g의 의미를, 굳이 G-force가 아닌 말 그대로 0g, 무게와 힘을 벗어난 상태로 본다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로의 접근은, 정철인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펼쳐낸 무대가 분명히 압도적이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보다 아름다운 신체의 움직임으로
결국 춤을 춘다는 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어떠한 이상점 또는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을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0g>를 보는 내내, 그리스 시대 예술품들이 떠올랐습니다. 인체의 분명한 날 것의 또는 잘 세공되어진 움직임과 실루엣에, 조화를 더해 펼쳐내는 <0g> 무대는, 0g이라는 주제를 너머, 무용이라는 장르로 인체를 설명하는 매우 잘 짜여진 하나의 예술품과 같았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그 움직임은, 그 조화는, 어떻게 아름다운가? 이러한 질문에, 0g은 안무가들이 붓이자 물감 그리고 도화지가 되어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이번 공연에서 한 가지의 아쉬움을 가져본다면 그것은 의상입니다.
0g이라는 주제를 벗어나, 보다 너른 시각으로 비상할 수 있을 이 작품에, 비본질적일 수 있으나 본질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의상이 함께 했다면, 지금의 규모보다 몇 배는 큰 공연장에서 상연되어도 손색이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신발”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다는 정철인 안무가의 뜻과 전혀 상관 없이, 저는 극에 등장한 “신발”과 “사과”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 극 전체에 어떠한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떠한 의미인지, 결과된 스토리텔링은 무엇인지는, 개인적인 감상이니 적지 않았지만, 혹시나 공연을 보신 분들이라면, 안무가 분의 말씀과 별개로 두 소재에 대해 한 번 의미를 부여해 보았던 극을 재창조해보세요. 분명, 재미있을겁니다.
총평을 해보자면,
정철인 안무가의 <0g>는 인체의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그 움직임이 주는 아름다움을 압도적으로 표현해내었습니다. 이러한 압도는, 그 아름다움이 단순히 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에너지가 가득한 동적인 움직임으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무용이기에 표현 가능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멋진 무대를 펼친 정철인 안무가는 12월 <초인>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많이 기대되네요.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 하나의 작품이 구성 되어 간다는 것
최강프로젝트는 지난 <여집합 집집집 합집여> 작품 이후로 펼쳐낸 이번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에서, 본인들의 퍼포먼스에 영상을 단순히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이 존재함으로서 하나의 작품이었던 퍼포먼스가 더 큰 규모의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는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풀어갔습니다.
무용과 영상의 단순한 집합을 너머
그들의 퍼포먼스는, 과거의 퍼포먼스가 영상으로 재생되며 재구성되고 의미를 찾아가며 구분됩니다. 단순히 현재의 퍼포먼스만이 존재할 때는 가질 수 없는 의미가 영상으로 인해 생겨남과 동시에, 과거의 영상이 쌓여 만들어낸 현재의 의미가, 과거가 되어 다시 찾아온 현재에 의미를 더하며 점층적으로 만들어져가며 마치 한 편의 작품이 구성되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위트 있는 구성과 단순한 동작의 변형된 반복으로
이렇듯 최강프로젝트의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는 일종의 예술작품 또는 사유의 점진적인 탄생과정을 무대에 표현해낸듯 합니다. 위트 있고, 흥미롭게 말입니다.
어쩌면 굉장히 복잡해질 수 있는 변형이 이루어지며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레퍼토리를, 단순한 동작들의 반복 그리고 눈에 띄며 친숙한 도구들을 통해 쉽게 접근하게 한 배려 역시 돋보였습니다. 웃음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변형되어가는 동작들과 무대 전체를 움직이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도구 또는 장치의 활용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굳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합니다.
최강프로젝트는, 그 이전작인 <여집합 집집집 합집여>의 공연들을 상당히 많이 남겨두고 있다고 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들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한 번 무대에서 만나보세요.
후기를 마치며
2019 스텝업 파트 2는, 정철인 안무가와 최강프로젝트의 각자의 매력이 뚜렷한 작품들로 인해 매우 가치 있게 채워졌습니다.
새로이 스텝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재영, 최강프로젝트-강진안, 최민선- 안무가의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무대와, 올해로 두 해째를 거듭하며 보다 풍성해지거나 깊어진 무대를 선보인 정철인, 이은경 안무가의 무대는, 2020년 스텝업 무대 역시 기대하게 만듭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2020 스텝업 또는 분명 가치 있는 예술 무대들에 대한 후기로 다시금 “오롯이 문화를 비추다”를 열 날을 기다리며, 저는 오늘의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공감과 클릭 그리고 덧글이, 이제 막 첫 문을 연 “오롯이 문화를 비추다”를 더욱 채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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