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KNCDC) 2021 빨래 리뷰 (현대무용, 남정호 연출)

오롯이 문화를 비추다

국립현대무용단(KNCDC) 2021 시즌 첫 공연 “빨래” 리뷰 (연출: 남정호)

 

 지난 일요일(2021.03.21.), 국립현대무용단의 2021 시즌 첫 공연 “빨래”의 네 번째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빨래”라는 제목을 들으시면 아마 동명의 뮤지컬 “빨래”가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해드릴 공연 “빨래”는 뮤지컬 “빨래”와는 다른, 현대무용 공연입니다. 현대무용하면 어렵게 여겨져서 짐짓 작품에 대한 감상을 포기하시려 하기 쉬운데요. 이번 현대무용 공연 “빨래”는 뮤지컬 “빨래”만큼이나 쉽고 재미가 가득하니, 한 번 이 리뷰를 통해 작품의 매력을 짐작해보시는건 어떨까요?

 

 #미안하다, 오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로, 문화 공연장의 가용 가능 좌석수가 대폭 축소 되었습니다. 그나마, 공연 상연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치열해진 티켓팅 전쟁에, 어쩌면 매진된 창만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지요. (그래도 이전엔 좋은 자리는 못 잡아도, 어쨌든 예매는 가능했으니까요.)

 다행히도, 이번 공연에서는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시간적으로도 가장 여유로운 일요일 점심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빨래 티켓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2021 공연 “빨래” 공연 후기 감상평 티켓 사진

 그런데, 공연 관람을 하루 앞두고 조금은 염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첫 상연 이후, 본 공연에 대한 리뷰가 SNS 및  거의 올라오지 않았거든요. 하필 또 그나마 올라온 리뷰들 중에, 해당 리뷰어(웹진 집필자)는 어떤 이유로 치켜세웠지만 반대로 저는 그 치켜세우는 부분들이 작품이 상당히 지엽적으로 연출되었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염려를 불러 일으켜 당일 공연장에 향하기 까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리뷰에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건, 이러한 염려와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기 때문이겠지요.

 

 #피켓팅의 결과는?

 해당 공연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1층 약 20석, 2층 약 20석 정도의 관객 규모로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사실, 공연 도착 전까지는 아무래도 온라인 예매로 이루어지다보니 젊은 층의 관객이 많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이게 왠걸 🙂

 보통 때의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관람객 연령층 대비 굉장히 상향평준화된 관객분들이 계셨습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어쩌면 기존 대비 SNS에 본 공연에 대한 감상평이 많지 않은 이유가 공개 SNS을 사용하는 관객 분들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하고, 일단, 한시름 놓고 공연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빨래터에서 시작된 삶의 여흥

 작품은 어느 빨래터에서 시작됩니다. 둥그렇게 모여앉아 빨래를 하던 이들(안무가: 이소영, 구은혜, 박유라, 정서윤, 홍지현)은, 어느새 서로의 이야기를 각자의 개성을 담아 풀어내며 빨래터의 여흥을 즐깁니다. 참 재미난건, 각자가 개성 있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 여흥을 다채롭게 풀어낸다는거에요 🙂

 그들의 수다스런 몸짓에 익숙해져갈 무렵(또는 기시감을 느낄 무렵), 이야기는 두 번째 막(실제 해당 공연에 막의 개념은 없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기준으로 나누어보았습니다)으로 넘어갑니다. 

 

 #빨래바구니의 끝없는 변주: 여흥 너머 삶으로, 삶 너머 역사로

 이러한 다채로운 여흥에는, 한 가지 아이템이 함께 하는데요. 빨랫감을 제외하곤 거의 유일한 무대 장치이자 소품인 나무 빨래바구니가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두 번째 막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이 나무 빨래바구니는 유용한 역할을 하는데요. 나무 빨래바구니는 마치 “삶의 고개”와 같은 역할을 하며, 굽이굽이 이어진 삶의 길을 그려냅니다.


빨래 소품
국립현대무용단 2021 공연 “빨래” 소품

 비스듬히 놓인 나무 빨래바구니에, 서로의 몸을 다리 삼아 건너고 건너 한 데 모이는 일련의 시퀀스는 개인적으론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해서, 혹시 이 작품이 이후 상연될 때 명당 자리를 찾으신다면, 중앙에서 살짝 많이 우측 자리에 앉으시길 추천드려요. 비스듬히 선 무용수들의 일련의 몸짓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며 정말 아름다운 미장센을 만들어내거든요 🙂

 굽이굽이 삶의 고개를 서로를 지탱해 건너는 이들의 몸짓과 표정을 보다보니, 그들이 떠나온 또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어딘가가 보입니다. 그 곳은 그들의 고향일 수도 있고 삶의 어느 한 시점일 수도 있고 그들의 애환이 남은 어느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처연함이 깊어질 무렵, 앞서 살짝 등장한 이방인이 극에 개입합니다.

 

 #적재적소 미얄할미 (강령탈춤 이수자인 박인선 분)

 미얄할미는 한국 전통 탈춤에 등장하는 인물로, 주로 보따리, 부채, 방울 등을 주렁주렁 달고 해학적인 엉덩이춤을 추며 극의 여흥을 이끄는 늙은 여성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지역에 따라 미얄할미의 외향도 구성도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는 조선시대 박대 받는 조강지처를 상징하는 인물이지요.

 아마 봉산탈춤 등을 보신 적 있다면, 극의 후반부에 왠 노부부가 나와 처첩갈등이나 부부싸움 등으로 해학적인 장면을 그려내는 모습을 보신 기억이 있을거에요. 그 장면에 등장하는 “할미”를 “미얄”이라고 칭합니다. 

 현대무용 “빨래”에서 미얄할미는 앞서 초반부에 살짝 등장하였다가 사라진 후, 빨래터가 여흥을 너머 삶과 역사를 그려내는 시점에 재등장합니다.

 앞선 초반부에서 잠시 나와 극의 환기를 이끌던 미얄할미는, 이번에는 극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사연을 신명 나나 구슬픈 국악으로 풀어냅니다.

 

 스포일러 및 미얄할매의 변주에 따른 의미 (아래 접은 글을 클릭하세요)

 현대무용 “빨래”에서 미얄할매는, 자신을 닮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집 나간 남편을 찾아 떠도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얄할미는 이러한 떠돌이 생활 중, 삶의 재미를 느껴 이러한 떠도는 삶을 (남편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삶의 낙으로 여겨 전국방방곡곡을 “여행”하게 됩니다.

 앞서 조선시대 탈춤에서는 해학적인 의미로 남편과의 관계에 묶여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 까지 하는 미얄 할미는 빨래에서, 남편을 벗어나 자신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찾는 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미얄 할매는 관객과 빨래터의 아낙네들에게 공감과 함의를 남김과 동시에, 무엇보다 그 인물이 가지는 극적인 즐거음으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현대무용 “빨래”에서 미얄할매는, 자신을 닮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집 나간 남편을 찾아 떠도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얄할미는 이러한 떠돌이 생활 중, 삶의 재미를 느껴 이러한 떠도는 삶을 (남편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삶의 낙으로 여겨 전국방방곡곡을 “여행”하게 됩니다.

 앞서 조선시대 탈춤에서는 해학적인 의미로 남편과의 관계에 묶여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 까지 하는 미얄 할미는 빨래에서, 남편을 벗어나 자신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찾는 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미얄 할매는 관객과 빨래터의 아낙네들에게 공감과 함의를 남김과 동시에, 무엇보다 그 인물이 가지는 극적인 즐거음으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공연

 이러한 미얄할미의 등장은 현대무용 “빨래”를 보다 대중적이고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 시킵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저는 어머니와 함께 이 공연을 보러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어요. 제가 근래 잠시 쉬는 기간이라, 그간 바빠서 1년 넘게 어머니와의 문화생활을 다녀오지 못했기에, 이번에 여러 작품을 두고 고민하다 4월의 국악 공연을 어머니와 다녀오기로 하였거든요. 아무래도 현대무용보다는 좀 더 친숙하고 내러티브가 있는 국악 공연이 낫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나, 미얄할미를 비롯한 현대무용 “빨래”의 한국적인 요소의 차용(심지어 한국적이고 충분히 좋은 음악들까지!)과 보다 쉽게 접근 가능한 장면들의 항연은, 이 작품도 어머니와 함께 올 걸 하는 후회를 주었답니다. (마침 딱 이번주에서 다음주가 제 인생의 휴식기라. 덕분에 지금 이렇게 리뷰도 기일게 쓰고 있는거거든요.)

 

 #EBS에서 만나요 🙂

 그래서인지, 어느 장면부터인가 이 작품을 EBS 문화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낯섬을 지닌 현대무용을 충분히 친숙하게 접근하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서, 현대무용이 가진 아름다움은 충분히 담았구요.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에 기획되어서인지) 1열이 가장 어울리는 공연인지라, 이 공연을 일반 공연장의 뒤의 뒤의 뒷자리에 앉아 보는 것보다, 더 좋은 앵글로 방구석 1열에서 보는 경험 또한 결코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물론, 공연은 역시 직관입니다만! (그 직관을 제가 했다구요!)

 

 #여성무용수들이 풀어내는 빛나는 “씻어냄”의 향연

 어느새 작품의 막바지, 미얄할매가 떠난 자리, 서로의 사연을 보다 광의적으로 풀어내며 자기 자신들을 서로 그리고 스스로 씻어냅니다. 이 씻어내는 몸짓들은 홀가분하며 싱그럽습니다. 누군가는 이 공연을 마치면, 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무대를 나설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이 장면들에서, 여성 무용수들이 표현해내는 디테일들이 섬세히 살아나며 보다 풍부한 해방감(시원함)을 전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음새의 디테일

 이렇듯 다채롭고 대중적이며 함의를 담은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유일한 아쉬움을 이야기해본다면, 때때로 장면 간의 이음새가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도, 구성도, 미장센도 큰 즐거움을 주었지만, 몇 몇 장면의 전환에서 잠시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는 (연출 상?) 빈 부분들이 느껴져, 일종의 옥의 티처럼 여겨졌습니다.

 

 #본 공연의 재상연을 기대하며

 그럼에도, 이 작품은, 만일 제가 1) 피켓팅에 실패했거나, 2) 평이 거의 없다는 점에 염려해 표를 취소했거나, 3) 특정 평에 미리 실망해 관람을 포기했다면, 뒤늦게 정말 후회했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대신… 어머니와 함께 오지 못함이,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빨래 무대와 소품
국립현대무용단 2021 공연 “빨래” 공연을 마친 후 무대와 소품

 듣기로는 5월에 재공연(아르코 대극장)이 있다하던데, 혹시 이 리뷰를 보고 현대무용 “빨래”가 궁금해지신 분들이 계시다면 놓치지 마세요! 저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구요 😉

 끝으로,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빨래” 커튼콜 영상을 전해드리며,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빨래” 커튼콜 영상

 

 그럼 저는, 또 다른 좋은 문화생활 리뷰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다채로운 즐거움이 있는 블로그 안테나곰의 솔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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