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일민미술관 야간유람: 전시회, 한국화를 꺼내들다.

 

 성탄절 크리스마스를 마치고 찾아온 월요일. 저는 귀한 연차를 써서 간만에 광화문 나들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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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리플랫

 

 바로,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의 전시 관람 프로그램인 야간유람에 참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야간유람은 전시회 정규 운영 시간을 마친 후 또는 휴일날 저녁 열리는 큐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가 직접 해당 전시에 대한 기획의도와 작품소개를 하는 시간입니다.

 

 

 광화문 일민미술관 야간유람: 전시회, 한국화를 꺼내들다.

 미술을 또는 예술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술을 그리고 예술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삶의 낙으로 삼은지도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 이상 많을 때는 한 달에도 몇 차례 들르기도 하는 다양한 전시 방문 중에 생각해보면 “한국화”  기획 전시회를 만나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개의 한국화들은 좀 더 큰 범위에서, “한국 예술, 한국 문화”에 대한 전시 또는 예술애호가 또는 단체의 “소장전” 등을 통해서 드문드문 만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도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날의 일민미술관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시가 제게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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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소개

 

 야간유람 프로그램은, 약 한 시간동안 큐레이터분이 전시회 전반을 돌며 기획의도와 주요한 작품들 그리고 전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과 그 의의 등을 설명하는 알찬 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날 전시에 대해 한 번 짧게나마 살펴볼까요?

 

 

 흐름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화의 역사에 담긴 애환과 정신

 전시 “다시 그린 세계”는 크게 두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조선시대부터 사사를 통해 전승되어 온 한국화 화가들의 작품들을 선형적으로 소개하며 한국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섹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근래 현대사회에서 한국화가 어떠한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는지입니다.

 

 한국화란?

 우선 한국화의 단어 뜻, 정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국화”는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제안되어, 1980년대가 되어서 제도적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한국화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혼동될 수 있는 용어와 함께 설명해볼까 하는데요.

 하나는 “전통화”, 전통화는 한국화와 달리 그 범주 내에 그림 외에도 서예(글씨)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동양화”, 동양화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조선) 뿐만 아닌, 동양 전반에서 이루어진 화풍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널리 퍼진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용어이지요.

 이러한 두 단어와 달리, 한국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회화로서 한국인이 한국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역사를 담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작품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화의 전승

 전시 “다시 그린 세계”는 한국화 화가들의 레퍼런스 또는 정신적인 대들보 역할을 하는 “겸재 정선”의 작품 “숙몽정”을 시작으로, 이후 조선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그 계승되어온 화풍에 따라 선형적으로 전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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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숙몽정

 “추사 김정희”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다른 작가들의 표현 방식에 대해 비교하기도 하고, “추사 김정희”의 결을 이어간 “흥선대원군”, “장승업”의 결을 이어간 제자 “안중식” 등의 작품을 선형적으로 배치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승되어오는 작품들의 변천사를 함께 볼 수 있게 하는 등, “일민미술관”의 소장품을 위주로 잘 정돈된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한국화의 애환

 그런 중에, 자연스레 왜 한국화의 기획전은 국내에서 어려운 일인가? 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한국화의 애환이 한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1) 한국화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좋은 작품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의 수탈로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있기 때문에 한국화 전반을 충분히 설명하는 전시회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해당 전시에 복제품이 전시되어있는 몽유도원도를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도둑놈 심보라도 낯짝이 무한정은 아닌지 그 작품들을 대놓고 전시하지는 못하고 야금야금 전시하는 “일부” 일본의 문화적 야만성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겪으며, 한국화 작가들의 많은 수가 일제 부역자(친일파) 또는 월북자(빨갱이)의 범주에 들어가며, 그들의 작품에 대한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언급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친일파”의 작품 또는 “빨갱이”의 작품이 “한국”을 설명하다니!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또 금기시 되어야 할 일이겠지요.

 

 3)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화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하여, 실제로는 한국화 작가들의 작품의 위작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앞서 “천경자” 작가와 같이 어떤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한 다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품을 판단할만큼의 데이터와 그를 토대로 하는 분석과 고찰이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민미술관의 “다시 그린 세계”는 그 안에서 한국화에 대한 다양한 가치들을 잘 정리해 선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몇몇 작품들을 통해서는, 한국화 작가들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릴 수 없었을지 모를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았던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화 이야기

 청전 이상범의 “산수도대련”

 신기하게도 전시회를 가서 전시장을 쭈욱 둘러 보다 보면, 꼭 눈에 확 들어와 가슴에 꽂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앞서 러시아 아방가르드 전시회에서 저의 퇴사를 결심하게 해준 (…) “알렉산드 르 드레빈”의  추소바야라는 작품을 비롯해서, 정말 그 어떠한 설명이나 다른 이유가 없이, 작품 앞에 서면 무언가 감정적으로 확 와닿는 작품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이날 저에게 그러한 작품이 또 하나 찾아왔으니, 바로 청전 이상범의 “산수도대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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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이상범의 산수도대련

 

 개인적인 감상은 정말 개인적인 것인지라 풀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으려고 하나, 이날 전시를 마치고 돌아와 이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으로 바꾸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제게 와닿았는지는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층에 청전 이상범 작가의 작품이 하나 더 있는데, 멀리서부터 “아!” 싶었습니다. 이 분의 결이 정말 좋았나 봅니다 🙂 )

 

 청천 이상범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의 얼을 지켜 준 사건 중 하나인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삭제 사건에 역할한 기자로, 이 일로 일제로부터 모진 수모와 옥고를 치루어야 했다고 합니다.

 해당 전시를 들르신다면, 1층의 한 켠에 위치한 이 작품을 꼬옥 만나보시고 그 그림에서 위로를 얻어보시길 바라여 봅니다.

 

 

 월전 장우성의 “학과 소나무”

 2층까지 일제의 영향을 받은 채색화(이걸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와 현대미술에서의 다채로운 색채를 담은 그림들을 보며 조금은 혼미해진 정신으로 3층에 들어서자, 정신이 잠시금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적”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써도 될까 싶지만, 작가의 “한국”의 것을 향한 애달픈 노력이 느껴지는 깊이감 있는 학과 소나무 그림이 저를 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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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장우성의 학과 소나무

 

 초중기 일본 유학의 영향을 받아 동양화적인 그리고 일본화적인 수려한 색채감으로 멋진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며 색채화의 계보를 이끌어낸 월전 장우성 작가는, 이후 한국적인 색채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한국적인 채색화를 선보이는데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월전 장우성 작가의 그 노력의 성과 그리고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공유할 수 있는 어떠한 일련의 결을 이 그림을 통해서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의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찰

 사실, 앞서서 말씀드린 선형적으로 펼쳐진 조선시대 한국화에 대한 하나의 섹션과 함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현대 화가들의 한국화적인 작품들에 대해서는 한국화의 범주보다는 근대미술 또는 현대미술의 측면에서 축을 달리 하는 작품들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화 또는 한국화를 이루는 요소들을 활용한 몇 몇 작품들은 솔찬히 인상적이었고 또 재미났습니다.

 

 배재민의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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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민의 금강

 한국적인 문화라고 하면 주로 유교와 불교를 떠올리지요. 불교적인 색채를 현대적으로 그리고 개성 있으면서도 힘이 넘치게 표현하여 참 재미났던 작품입니다.

 

 이은실의 “말할 수 없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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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실의 말할 수 없는 시도

 이날 만나본 작품 중에 가장 작가 자신을 잘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인 작가이자 작품이었습니다. 직접 보면 특유의 아우라가 있어서, VR로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손동현의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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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의 한양

 어릴 적에 겸재 정선 작가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겸재 정선 작가는 어느 지역을 방문하면 마치 나 여기 다녀갔소라는 발도장처럼 그 지역의 그림을 그렸다는 풍문인데요.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손동현 작가의 “한양”은 큐레이터 분이 설명해주신 마블과 같은 만화/애니메이션의 화풍으로 와닿기보다는, 마치 손도장과 같은 그래피티의 결로 더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겸재 정선의 작품도 일면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래피티와 같은 손도장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로랑 그라소의 “과거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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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그라소의 과거에 대한 고찰

 외국인 작가가 그린 한국화. 그래서인지 오히려 조선시대 한국화가 가지는 여러 특징들이 잘 재현된 듯한 느낌입니다. (나쁜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전시된 현대의 한국작가들의 많은 작품들이 한국화의 기법 또는 어떠한 지점들을 사용해 현대미술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것들이 많아보이는 중에, 오히려 외국인(역시 덕 중에 덕은 양덕이라고)이 바라보는 한국화의 미가 역설적으로 재미나게 다가왔습니다.

 대개의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전시에, 해당 작품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대여하여 전시하였다는데,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폭넓은 그리고 충분한 고찰이 느껴진 큐레이터와 함께 한 시간

 이날 전시 그리고 야간유람은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큐레이터가 해당 전시에 대하여 작품 소개와 함께 위트 있게 그리고 때로는 세심하게 풀어나간 여러 결의 이야기들은, 이 전시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더욱 와닿게 해주었습니다.

 

 젊은 큐레이터와 기획자분들의 시각이 담겨서인지, 폭넓은 (언젠가 SNS에서 본 것도 같은) 서브컬쳐(라고 쓰고 누군가에겐 메이저컬쳐라고 읽는다) 계열의 작품들 역시 만나볼 수 있었던 점은 해당 전시를 한국화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좀 더 현대적인 미술에 대한 경험 역시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화”가 한국에서 충분히 누려질 수 없는 이유와 그럼에도 이 전시를 준비하고 열어낸 의미에 대해서는 분명히 공감할 수 있었고, 또 한 시대를 넘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쉽사리 이어내기 어려운 부분들을 이어내려는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전시를 더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민미술관의 한국화를 꺼내든 시도가, 그 가치와 노력을 인정 받아, 한국화에 대한 담론이 보다 건설적으로 이어지고 또 한국화가 빛을 보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또 와닿았던 작품들이 많았으나, 이 이상의 소개는, 직접 전시를 들러서 접하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아, 또 내일도 (아니 지금이 12:30분이니 오늘이네요) 격무에 시달릴 저를 위해,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야간유람은 오는 수요일(12월 29일) 2회차를 끝으로 마쳐지지만, 전시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으니, “한국화”와 현대의 다양한 시도들을 만나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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